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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느낌이 있는 책방 [맛있는 책, 멋있는 책] 201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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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2019.02.02 14:41 | Posted in 새로운 이야기/느낌이 있는 책방

 

느낌이 있는 책방 [맛있는 책, 멋있는 책]

 

 

 

 

한권의 책, 한곡의 음악, 한편의 영화는 마술처럼 맘을 달래 주는 특기가 있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을 따라 맛집을 순례하면서 느끼는 그런 즐거움을 책, 음악,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1. 반바지 당나귀 - 앙리 보스코

 

 

이 소설을 단순히 한 소년의 성장소설이라 부르기엔 좀 아깝다. 작가의 감추어진 철학이 좀 심오하기 때문이다. 앙리 보스코는 어느 평론가의 표현을 빌자면 "현대의 가장 위대한 몽상가"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읽고나면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묘한 여운이 남는다.

 

이 소설의 화자는 어린 남자아이 "콩스땅탱"이다. 콩스땅탱은 자신의 집에 기거하며 부엌일을 도우는 고아 소녀 "이아생트"와 함께 마을로부터 외떨어져 살아가는 노인 "시프리앵"의 삶을 엿본다. 시프리앵은 한겨울에도 꽃들이 만개한 산꼭대기의 정원을 가꾸고, 당나귀에게 반바지를 입혀 마을로 심부름을 보내는 비일상성을 가지고 있다.

 

시프리앵은 젊은 시절 여러 나라를 떠돌며 거친 선원 생활을 했으나, 마침내 콩스땅탱이 사는 시골마을 뻬이루레에 정착하여 태초의 선만이 존재하는 에덴동산과 같은 평화의 동산을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시프리앵이 창조한 평화의 동산에 여우가 나타나 죄없는 동물들을 물어 죽인다. 길들여지지 않은 것에 의해 길들여진 것들이 파괴된다. 빼이루레의 정신적 지주인 "쉬샹브르" 신부는 '지상에서의 낙원 건설은 불가능하고, 그것은 천상에서만 가능하다'는 읊조림으로 절망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생떽쥐베리" 작가는 소설 『어린왕자』에서 여우의 입을 통해 수없이 많은 동일한 것들 중에 자신이 길들인 것만이 의미가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앙리 보스코는 『반바지 당나귀』에서 길들인다는 것은 이룰수 없는 꿈, 작은 울타리 안의 아주 잠시의 잠시의 평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한다.

 

지상낙원은 혼돈의 한 모퉁이에 위치한 길들여진 것들의 자그마한 모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노인 시프리앵이 그토록 구현하고 싶어하는 지상의 낙원은 그것을 건설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구현될 수 없는 고달픈 바램이 된다. 굴러 떨어질 운명의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시지프스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있다면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작가가 말한다.

 

 


 

 

2. 죄와 벌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인간으로 태어나 한 사회에서 살아가며 겪는 "나를 찍어누르는 사회와 제도, 구분선에 의해 나뉘어진 선과 악,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정의와 일탈, 끝없이 갈구하는 도피와 구원"의 갈등을 이처럼 심오하게 파헤친 책이 있을까 싶다.

 

 

문화적 유산이란 판단과 행위의 반복적 실행이 누적된 것으로, 어느 순간 거대한 사슬로 구성원들을 옭아맨다. 그러면서 오랜 누적과정을 통해 생겨난 갖가지 형태의 부조리와 판단기준 (경계)의 모호함을 포악하게 휘두른다.

 

"라스꼴리니코프"는 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한 가난한 대학생으로 악덕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려는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이 악덕한 노파뿐 아니라 평범한 노파의 여동생까지 엉겹결에 살해하게 된다. 이후 라스꼴리니코프는 열병을 앓듯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론적 정당성과 예심판사 "뽀르피리"의 현실적 압박 사이에서 출구없는 자기번민에 시달린다. 라스꼴리니코프가 겪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를 통한 자기정화와 구원을 제시하는 "소냐"나, 타인의 비겁을 이죽거리며 거침없이 방탕한 "스비드리가일로프"의 행동 양식으로 해결되지 못한다.

 

이것을 그냥 개인의 일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폴레옹은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의지를 실행에 옮겼기에 위대한데, 나약한 라스꼴리니코프는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 제도와 틀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시베리아 유형소에 갇힌다.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번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폐에 신선한 공기가 공급될 수 있을까? 뒷 이야기에서 작가 도스도예프스키는 멋있는 선언이 아닌 익숙하고 반복적인 생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애초에 위대함이란 일반인들에게 없을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 라스꼴리니코프도 우리도 일반인일 것이다.

 

죄와 벌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한편의 웅장한 교향곡같은 글이다. 5부작으로 이루어진 구성 속에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망설임과 두려움속에 느리게 연주되는 도입부를 지나면, 노파를 살해한 후 오히려 심리적인 방황을 빠른 템포로 이끌어 가고 마침내 자수라는 클라이막스에 어렵게 도달한 후 해답없는 묘한 여운을 남기는 교향곡이다.

 

능동적 선을 어디까지 행할 것인가? 좀 더 평화로운 해법을 찾고자 고심하는 50대 이상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3. 걸리버 여행기 - 조나단 스위프트

 

 

소인국과 거인국을 여행하는 걸리버의 모험담으로 알고있는 동화책  『걸리버 여행기』는 사실 원작과 많이 다르다.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 (릴리퍼트), 거인국 (브롬딩낵), 하늘을 나는 섬나라, 말들의 나라 (휴이넘)의 4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날카로운 풍자와 조소를 버무린 시대 비판서이다.

 

 

 

소인국에서 걸리버는 별 것 아닌 하찮은 일로 옥신각신하고 전쟁까지 하는 몸집이 작은 사람들을 목도하고, 거인국에 가서는 뻥뻥 뚤린 큰 구멍과 억센 털이 나 있는 거친 대지와 같은 거인들의 피부를 자기들끼리 매끄럽고 고운 살결이라고 찬양하는 것에 우스워 한다. 하늘을 나는 섬나라에선 지식인이라는 작자들이 현실과 유리된, 이루어질 수 없는 허망한 이론에만 빠져 있음을 보고 (그래서 이 나라가 하늘을 나는 섬나라이다), 말들의 나라에서는 이성을 갖춘 말이 욕심과 몰이성으로 뒤범벅된 인간 (야후)을 째찍질로 끌게 하는 야후차 (말이 끄는 마차가 아닌, 야후가 끄는 야후차)를 타기도 한다.

 

스위프트가 살았던 18세기의 영국 (왕조시대)에 비하면 훨씬 진보된 21세기인 지금 읽어보아도 이 책은 문체만 조금 옛날식이지 아이디어 자체는 무척 신선하고 현대적이다. 인간이 때로는 얼마나 하찮은 일에 목숨을 걸고 으르렁대며 사는지 (소인국), 미세하게 관찰해보면 인간의 행위라는 게 얼마나 조악하고 거친지 (거인국), 현실과 유리되어 존재 목적을 상실했건만 여전히 판을 치는 허무한 이념들에 얼마나 휘둘리며 사는지 (하늘을 나는 섬나라), 겉만 인간의 모습일 뿐 실지론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찬 아귀인지 (말들의 나라)를 꼬집어 주기 때문이다.

 

중학생 자녀와 함께 읽고 토론하기에 적합한 책이다. 더구나 문학적 재능이 있는 자녀라면 책이라는 게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반향을 줄 수 있는가를 알려주고 행복하게 토론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4. 앵무새 죽이기 - 하퍼 리

 

 

이 책에 붙은 수식어 중 주목을 끄는 것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오랫동안 읽힌 책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 책은 대공항 시절의 미국을 배경으로 당시 행행하고 있던 인종차별이라는 은밀한 치부 (사실 아직까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를 어린 소녀의 천진난만한 시각을 빌려 고발하고 있는 책이다.

 

 

소위 단일 민족이라고 하는 우리도 '진보'니 '보수'니 서로 편을 갈라서 "프레임 대 프레임"의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인종의 전시장이라 할만한 미합중국에서는 훨씬 다양한 프레임의 부딪힘이 있을 수 있겠다. 특히 1930년대 경제공황의 어려운 시절, 아직도 노예 해방전쟁 때의 남부군의 기질이 많이 남아있는 알라바마주의 소도시 메이콤에서는, 눈에 보이는 피부색깔로 "내편, 니편"으로 테두리치는 것이 가장 익숙하고 간단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교육도 받지않고 주정부의 복지보조금으로 근근히 쓰레기처럼 살아가는 "유얼"씨네 딸 "마리엘라"는 착한 흑인 "톰 로빈슨"을 유혹하다 실패한다. 평소 톰은 목화농장에 일하러 유얼씨네 집 앞을 오가는 동안, 마을 사람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마리엘라를 측은히 여겨 기꺼이 힘든 일을 도와주곤 했다. 그러나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 톰은 '깜둥이가 백인을 강간했다'는 백인들의 무시무시한 프레임 조작에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탈출하다 죽게 된다. 사실 "톰이 흑인이라는 사실"이 죄였다. 

 

책 제목 『앵무새 죽이기』는 주인공 "스카웃"의 아버지 "핀치" 변호사가 스카웃의 오빠 "잼"에게 생일선물로 엽총을 선물하며, "새는 곡식을 쪼아먹고 사람들에게 해를 주어 사냥해도 되지만, 앵무새는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으니 쏘면 안된다"고 한 말에서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무조건 새라고 쏘고 보면 유익한, 해를 주지않는 앵무새도 맞아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레임 대 프레임에 갇혀 내부 사항의 고려가 없이 휘몰아치는 이념의 전쟁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지 일깨우는 말이다.

 

미국처럼 인종 차별이라는 은밀한 뿌리가 죽지않고 남아있는 사회에서는, 그래서, 이 책이 그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또 그 주제가 시대를 건너뛰어 메아리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 책은 저들의 형편을 모른 채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시하며 '우리들'의 틀을 함부로 '저들'에게 씌우는 것이 얼마나 성급하고 잔인한 일인지 지적하고 있다.

 

아버지 핀치 변호사의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살아가야 한다"는 가슴때리는 말은 무리들로부터 홀로 떨어져 자신의 양심에 부끄럼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좋은 격언이다. 좋은 책이다. 중고생 아이와 같이 읽고 토론해도 좋을 듯 싶다.

 

또한 성숙한 시각을 가진 작가가 9살 스카웃의 명징한 단어로 '이 세상의 틀 제대로 보기'를 이야기 하고 있기에, 이 책은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천진난만한 목소리의 '프레임 포기 선언 제청문'을 듣고 싶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5. 백년동안의 고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 책은  콜롬비아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피터 박스올의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1001권의 책』에 선정된 책이기도 하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책을 묘사하는 평론가들의 단어인 듯하다. "마콘도"라는 시골마을에서 7대에 걸쳐 100년동안 살아가는 부엔디아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부적으로 상상, 환상, 마술, 신화의 색채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글로 쓰여진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에 자신의 상상도를 만드는 공감각적인 DNA를 가지고 있기에, 이 책은 읽어보면 재밌다. 

 

누구나 한번쯤 나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집안의 내력에서 연유한 게 틀림없다고 여겨지는, 어떤 불가사의한 기운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을 작가는 죽은 사람이 등장해 산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등장 인물들의 이름을 선조의 것과 반복적으로 동일하게 지어주며 은밀하게 암시하고 있다. 거기다 우울한 느낌을 가져다 주고 파괴적인 낌새를 비치는 비를 황토색 색깔로 색칠하고 4년 이상의 시간을 부과하는 걸 보면 마르케스의 글 솜씨는 가히 마술적인 것 같긴 하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사실 그 누구와도 영혼의 합일을 이루지 못하기에 고독 속에서 죽어가거나 사라져 간다. 32차례의 봉기를 한 아우렐리아노 대령의 경우에서 보듯, 이념이라는 거대한 정체불명의 것보다는 두려움이 이 세상과의 투쟁을 이끌고 또 고독감을 이루는 진짜 원인일 수 있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 책은 근원적인 생의 고독감을 몽환적인 그림책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어휘, 문장을 따라 음미하다보면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우리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비밀스런 고독감이야 말로 우리의 생을 추동하는 엔진인 것이라는 생각을 또다시 하게 된다. 환상적 말솜씨로 인생을 털어놓는 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6. 인간의 굴레에서 1, 2 - 서머셋 모옴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한 꾸러미의 재료가 되고, 거기에 작가의 인생관이 더해져 탄생한 성장소설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백부에게 양육되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설의 도입부에 투입하고 주인공 (필립 케어리)을 절름거리는 불구로 설정하여, 육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도덕적, 정신적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공감있는 단어와 문장으로 창조했다.

 

 

 

 

적당한 정도로 예민한 문화적 감수성, 궁지에 몰렸을 때 변명거리를 찾으며 적당히 주위를 해하고자 하는 간사함, 이성으로만은 조절되지 않는 육체적·감성적 나약함, 이것들이 주인공 필립 케어리가 가진 굴레의 종류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굴레들은 우리들도 은밀히 가지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삶이 기쁨, 슬픔, 희망, 절망, 긍정, 부정, 용기, 두려움 등의 씨실과 날실이 교차되어 짜여지는 양탄자와 같다는 필립의 깨우침에서, 더불어 우리 자신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바라보고 긍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마음이 얻어지기도 한다.

 

대학생 자녀에게 권해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비록 다 컸지만 정신적 성숙이 필요한 우리 성인들도 다시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거기다 작가가 현학적이지 않은 편안한 서술로 이끌어가고 있어, 읽다보면 정서적으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공감이 절로 간다. 사오십대가 읽어도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무리없이 읽히는 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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